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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형, 최강서, 이운남, 최경남, 이호일. 18대 대통령 선거 뒤 잇달아 노동자들이 삶을 포기했다. 이들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살자’고 외쳤다. 하지만 대답 없는 메아리에 그쳤다. 깊은 좌절, 그리고 극단적 선택. 2013년 새해에는 이런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현재 ‘함께 살자 농성촌’은 전국적으로 수십 곳. <시사IN>은 대한민국 농성촌 12곳의 낮과 밤 24시간을 담았다. 박사부터 차마 얼굴을 드러내기가 두려운 학교 비정규직까지. 그들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바랐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손톱 밑 가시’를 강조한다. 길거리로, 송전탑·야구장의 하늘 감옥으로 내몰린 농성자들은 손톱 밑이 아닌 목구멍 깊숙이 가시가 걸려 있다. 이들의 가시를 빼내 숨통을 틔워야만 진정한 ‘국민행복시대’가 열리지 않을까.









   
 









   
 









   
 




죽은 동료 부모와 쓴 소주 한잔
한진중공업 노동자 문영복

1월29일 0시. 한진중공업 노동자 문영복씨(53)는 고 최강서씨의 아버지·어머니와 통닭을 안주삼아 소주를 한 잔씩 마셨다. “손해배상 철회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스스로 목을 맨 후배 최씨를 두고 길지 않은 몇 마디가 오갔다. 아들을 가슴에 묻은 부모에게 문씨는 할 말이 없었다. 가슴만 먹먹해 혼자 소주만 들이켰다. 









   

ⓒ시사IN 이명익
문씨는 1985년 입사했다. 빨리 돈 벌어 집 사고,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평범한 노동자였다. 입사 이듬해, 출근길마다 조선소 앞에서 피켓을 든 ‘여리여리한 여성’을 보았다. “간첩이라는 소리를 듣고, 관리자들에게 맞는 일도 많았는데, 그래도 끈질기데예. 도대체 왜 저럴까 ‘저 사람 한번 만나보고 싶다’ 했지예.” 바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었다. 문씨는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면서 세상에 눈을 떴다. 거리에서, 회의실에서, 농성장에서 잠을 잔 것도 여러 날이었다.

309일 고공농성, 여리여리한 여인이 희망버스를 불러오면서 이번에도 일을 냈다. 지난해 11월9일 회사는 정리 해고자 전원을 복직시켰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해피엔딩으로 보였다. 착각이었다. 복직자들은 작업할 물량이 없다는 이유로 곧 휴직해야만 했다.

문씨는 지난해 12월21일 최강서씨가 숨진 뒤, 그의 빈소를 지켰다. 저승으로 가는 최씨의 험한 길도 함께했다. 문씨는 “이번이 마지막 싸움이라고 생각하며 주먹을 움켜쥐는데도, 이따금 비보를 접하면 가슴이 무너진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문씨가 한숨을 쉰 그 시간,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 윤주형씨가 서른다섯 살 삶을 또 마감했다.





하늘 감옥에서 딸에게 전화를
택시노동자 김재주

김재주씨(51)는 밤낮이 뒤바뀌었다. 새벽 2시, 독서삼매경에 빠진다. 노동법·여객운수법 같은 ‘어려운’ 책도 읽고, 무협지도 읽는다. SNS를 통해 자신의 상황을 알리는 시간도 새벽녘이다. 저녁 6시에서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전기를 끌어다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가 생활하는 곳은 전주시 덕진구 백제로변 전주종합경기장 야구장 조명탑. 33m 높이, 하늘 감옥이다. 너비 70㎝, 폭 2m, 높이 60㎝밖에 되지 않아, 자리에 앉으면 김씨의 머리가 천장에 부딪히고 만다. 주로 누워 있다가 난간 밖으로 나가는 일이, ‘하늘 감옥’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시사IN 이명익
김씨는 2011년 11월5일 천일교통에서 해고되었다. “민주노총 노조를 세우면서 회사 측의 노조탄압이 시작되었다”라고 그는 주장했다. 김씨처럼 해고된 민주노총 소속 전주 택시운전 기사는 10명. 김씨는 고용노동부 노동위원회의 복직명령을 받았는데도 6개월 넘게 복직을 거부하는 회사에 항의하기 위해 지난 1월4일 하늘 감옥에 올랐다. 전주 시내에서 이곳이 교통량이 많은 곳이라, 시민들의 관심을 이끌어내기에는 제격이었다. 

김씨에게 전화를 걸자 수화기 너머에서 ‘우리의 투쟁,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라는 노랫말이 들려왔다. 그는 또 다른 하늘 감옥 동료인 쌍용차·현대차·유성기업 농성자들과 카카오톡으로 그룹 채팅을 한다. 하늘 감옥 동료들은 떨어져 있으면서도 연결되어 있었다.

바람이 불면 조명탑은 이리저리 휘청거린다. “아빠, 언제 와?”라는 열네 살 딸의 전화를 받을 때면 그도 흔들린다. 그래도 버티는 건 또 딸 때문이다. “딸아이에게 당당한 아빠가 되고 싶다”라는 김재주씨. 그가 하늘 감옥에서 석방될 날은 언제일까?





투쟁 1800여 일 시린 하루의 시작
재능교육 해고자 이현숙

새벽 5시, 서울 시청광장 근처 재능교육 건물 앞. 농성장에서 잔 이현숙씨(40)의 몸이 꿈틀거렸다. 새벽에 이씨가 깨어난 건 자동차 소음 때문이 아니다. 잘 곳 없던 노숙인이 이씨가 자고 있던 농성장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장기 농성장에서 종종 있는 일이다.









   

ⓒ시사IN 이명익
재능교육 해고자 농성은 2월26일이면 달갑지 않은 기록을 세운다. 노동계에서 비정규직 ‘최장기 투쟁’으로 기록된 기륭전자의 1895일 투쟁 기록을 갈아치운다.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싸움의 상징이 되었다. 2007년 5월 임금 및 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시작된 싸움으로 이씨는 여섯 번째 겨울을 길에서 맞았다.

현재 그녀를 포함해 11명이 비닐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이 가운데 7명이 여성이다. 이들은 단체협약 원상 복귀와 복직을 요구하며 거리 농성을 이어왔다.

비닐로 꽁꽁 싸맨 농성장은 춥다. 농성장에서 전기를 쓸 수 없어 낮에도 어두침침하다. 동굴이 따로 없다. 입구 쪽에 있는 난로에서 새어나오는 불빛, 그리고 물난로(물을 끓여 호스로 그 증기를 통과하게 해 따뜻하게 하는 장치)를 끓이는 버너에서 나오는 불빛이 전부다.

어쩌면 이씨에게 1800여 일을 함께한 동료들이 불빛이고 희망일지 모른다. 이번 설에도 그녀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이들과 농성장에서 차례를 지낼 것이다.





밥 짓고 국 끓여 철탑 위 동지에게
현대차 사내하청 해고자 박두원

현대차 사내하청 해고자 박두원씨(34)는 매일 아침 6시에 눈을 뜨면 간이 주방의 불을 켠다. 그는 농성장의 ‘셰프’다. 그가 손을 놓으면 20여 명이 배를 곯는다. ‘현대차, 사내 불법 파견 인정’을 외치며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인근 송전탑에 오른 천의봉·최병승씨도 굶어야 한다. 두 사람이 고공농성을 시작하며 송전탑에 오를 때, 박씨는 냄비·국자 등 요리 도구를 챙겼다.









   

ⓒ시사IN 이명익
고공농성이 시작된 지 107일째인 2월1일. 주방에 들어선 박씨는 전기밥솥을 열어 남은 밥을 확인했다. 주방이라고 해봐야 천막에 가스불과 큰 냄비 두어 종류밖에 없지만 이곳에서 그는 100여 가지 음식을 뚝딱 해낸다. 박씨는 “세수는 안 해도 손은 빡빡 문지르며 닦는다”라며 웃었다.

오전 8시30분 천씨와 최씨에게 토마토·호두 같은 영양식으로 아침밥을 올리고 낮 12시30분, 저녁 6시께 점심과 저녁을 올려보낸다. 박씨는 직접 물김치를 담그려고 작은 항아리도 마련해두었다.

3년 전만 해도 뭉툭한 그의 손에는 국자가 아니라 공구가 들려 있었다. 2001년 10월, 현대차 사내하청 업체에 입사한 박씨는 콘솔과 핸들, 천장 등을 달아 현대차 아반떼XD를 완성시켰다. 2010년 2월25일 그는 해고됐다. ‘불법 파견·정규직 인정’ 요구사항을 내건 파업이 끝나고서였다.

그를 농성장에 붙들어두는 건 고공농성을 하는 사람만이 아니다. 또 있다. 가슴에 묻은 아버지다. 그는 2003년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노동자대회에 참여했다가 구치소에 수감됐다. 50일을 보내는 동안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다. 임종도 못 지키고 구치소에서 꺼이꺼이 울어야 했다. 박씨는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이제는 결실을 보고 (농성의) 종지부를 찍고 싶다”라고 말했다. ‘아버지’라는 말을 꺼낼 때 목소리가 작아지던 경상도 사나이는 “매섭게 춥네예”라며 얼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린 영정사진 또 목이 멘다
장애인 시인 박현

서울 광화문 지하철 역사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어린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열세 살 박지우. 지우는 엄마·아빠가 일하러 간 사이, 뇌병변 1급 중증장애를 가진 동생 지훈이를 돌봤다. 남매는 지난해 10월 화재로 숨졌다. 누나는 혼자 빠져나올 수도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동생과 함께했다.

웃고 있는 영정사진을 볼 때마다 박현씨(31)는 그 환한 웃음 때문에 또 가슴이 멘다. 남매에 앞서 장애인 활동가 김주영씨도 숨졌다. 장애인들의 잇단 죽음은 박씨를 길거리로 불러냈다.









   

ⓒ시사IN 백승기

박씨의 하루는 아침 8시에 시작한다. 그에게는 달콤한 늦잠이다. 열세 살부터 16년 동안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나야만 했다. 장애인 시설의 기상 규칙이었다. 2011년 그는 자신의 결정으로 시설에서 벗어나 독립했다. 장애 1급인 그에게 독립생활은 활동보조를 받아야 가능했다.

2011년부터 보건복지부는 장애등급제를 통해 1급 중증장애인에게 활동보조를 제공하고 있다. ‘활동보조 인증점수 조사표’라는 점수를 매겨 등급을 나누고, 등급에 따라 보조받는 시간을 조정했다.

박씨를 비롯한 장애인들은 장애인등급제를 없애고 24시간 활동보조를 해달라고 요구한다. 24시간 활동보조를 받았다면, 지우·지훈 남매도, 김주영씨도 그렇게 허망하게 하늘나라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박씨는 시설에 있을 때 시를 썼다. ‘세상을 날 수 있는 작은 새가 되고 싶습니다/ 행복을 전해줄 수 있으니까/ 소나기가 되고 싶습니다/ 아픔과 상처가 많은 세상 잠시나마 씻겨줄 수 있으니까/ 해가 되고 싶어라/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은 냉정하고 굳어버린 세상 사람들 조금이라도 마음을 녹여줄 수 있으니까.’

‘작은 새’가, ‘소나기’가, ‘해’가 되고 싶어 박씨는 자주 광화문 농성장을 찾는다.




부산시의회 앞 바지를 벗으며
민주공원 예산 삭감 반대 화덕헌

1월29일 오전 10시 행위예술가이면서 부산 해운대구 의원(진보신당)인 화덕헌씨(48)는 이색 차림으로 시위를 준비했다. 분홍색 와이셔츠, 물방울 무늬 넥타이에 재킷, 빨간 양말, 그리고 트렁크 팬티. 부산시의회 앞에서 바지를 벗은 그는 ‘민주공원 반 토막 예산 규탄한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었다. 화씨의 옷차림을 본 부산시의회 직원들이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시사IN 이명익
부산시의회는 2013년 부산 민주공원 예산을 예년에 비해 52.7% 삭감했다. 민주공원 위탁운영비 요청액 11억800만원 중 5억1500만원만을 반영해 통과시켰다. ‘반값 예산’이 통과되면서 민주공원 안 체험 프로그램 등이 축소되고 민주화운동 계승 사업도 폐지될 위기에 처했다.

부산 민주공원 예산 삭감에 항의하는 부산 문화예술인들이 자발적으로 1인 시위에 나섰다. 1월8일∼2월5일 예술인들은 퍼포먼스 시위를 벌였다. 국악 연주자 김현일씨는 한복에 짚신까지 갖추고 태평소를 연주했고, 김덕원 사진가는 사진 작품을 길바닥에 흩뿌린 채 낮잠을 잤다.

바통을 이어받은 화씨는 반값 예산을 상징하는, ‘하의 실종’ 퍼포먼스를 벌인 것이다. 화씨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민주공원의 예산을 깎은 것은 민주화의 상징이자 부산의 자랑인 민주공원을 폐쇄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눈물 꾹 참고 <동백섬> 부르네
거리의 성악가 문대균

낮 12시30분. 서울 혜화동 문화체육관광부 앞. ‘국립오페라합창단 재창단’을 요구하는 목요 집회를 마친 문대균씨(36)는 광화문 교보문고로 향했다. “오늘은 공연이 없느냐”라고 묻는 부모를 피해 그는 교보문고에서 시간을 때운다. 부모는 아들이 또다시 해고된 것을 모른다.









   

ⓒ시사IN 이명익
문씨는 남들보다 늦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성악을 시작했다. 그러나 2007년 100대1의 경쟁을 뚫고 국립오페라합창단 단원이 될 만큼 실력을 평가받았다.

노래밖에 몰랐던 성악가가 ‘거리의 투사’가 된 것은 2008년 12월31일 국립오페라합창단이 해체되면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경영효율화를 이유로 해체시켰다. 단원 43명이 복직을 요구하며 6개월 동안 농성했다. 그러자 2009년 문광부는 노동부가 주관한 사회적 일자리 창출 사업으로 ‘나라오페라합창단’을 설립해 그들을 계약직으로 채용했다. 계약 2년째 노동부가 예산 지원에 난색을 표했다. 문광부가 1년 추가고용 보장을 약속하면서, ‘2012년 4월 지원이 종료된 뒤 어떠한 단체행동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확약서를 받았다. 서명하지 않으면 고용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문씨는 거부했다. 그와 생각이 같은 노조원 11명과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집회를 시작했다.

무대를 떠난 지 650여 일. 처음 농성을 함께 시작한 12명 가운데 이제 5명만 남았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하나둘 떠났다. 목요일마다 노래를 부르며 집회를 여는 이들에게 ‘금지곡’이 있다. 가곡 <동백섬>이다. ‘우리는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해 겨울바다 끝난 곳에서. 외로이 앉아 고개를 젖히고 그저 노래만 불렀다.’ 시작과 동시에 눈물바다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문씨가 교보문고로 향하며 혼자 노랫말을 읊조렸다. “우리는 함께 노래를 불렀다….”





영하 18℃ 길바닥 선생님이 앉아 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김수미

1월25일 오후 2시. 체감온도가 영하 18℃라는 한파특보에도 김수미씨(가명·45)는 서울 세종로 청사 앞 길바닥에 앉았다. 김씨는 특수교육 보조교사로 비정규직이다. 김씨 같은 특수교육 보조교사를 비롯해 급식조리사, 도서관 사서, 학교 행정직 등으로 일하는 전국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해 11월 파업을 벌였다. 이들은 무기 계약직 전환을 요구한다.

학교가 2년 이상 일한 비정규직을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꺼려 1∼2년 단위로 계약 해지를 하는 경우가 많다. 계약 해지는 개학을 앞둔 1월 말∼2월 초에 집중된다. 김씨도 이날 “학교가 재계약을 주저하고 있다”라고 걱정했다.









   

ⓒ시사IN 이명익

일주일 뒤 김씨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1월31일 학교가 그녀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특수반 학생이 줄어 재계약이 곤란하다는 게 학교 측이 내세운 이유였다. 학교 관계자는 “김씨가 2월 말이면 계약 2년이 되어 무기 계약직 전환 대상은 맞다. 하지만 무기 계약직 전환 대상이라서 해고한 것은 아니고 특수반 학생이 올해 3명으로 줄어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 3명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김씨는 걱정이 태산이다. 비정규직이기는 하지만 보조교사로 근무하며 월급을 받았던 그녀는 새 일자리부터 알아봐야 할 처지다. 김씨는 “특수학교 쪽 자리를 알아볼밖에”라며 한숨을 지었다. 올해 한파는 이씨에게 더 매서워 보였다. 몸보다 마음에 더.





저 대형마트를 꼭 이기고 말겠어
망원시장 상인 임병근

1월25일 오후 4시.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서 농산물을 파는 임병근씨(49) 손길이 분주했다. 평일인데도 장보러 나온 이들로 붐볐다.

임씨에게는 설이 대목이다. 정신없이 물건을 정리하고 팔면, 몸은 힘들어도 흥이 절로 난다. 임씨는 요즘 한 가지 일을 더 해야 한다. 1인2역이다. 사장이면서 동시에 거리 농성자로 변신한다. 그는 ‘합정 홈플러스 입점을 반대하는 천막농성’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8월 한여름에 시작한 농성은 가을과 겨울을 지나도 계속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망원시장에서 670m 떨어진 합정동 자이 신축 건물 지하에 1만4295m²(약 4324평) 규모로 대형마트 홈플러스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임씨가 일하는 망원시장 주변은 이미 대형마트 포화 상태다. 인근 월드컵경기장역에 홈플러스가, 망원역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영업을 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또다시 홈플러스가 들어서면, 주변 재래시장 상권을 무너뜨리는 ‘포식자’가 될 것이라고 임씨는 주장한다.  

낮 12시부터 저녁 8시까지 그는 자신의 순서일 때 농성장을 찾는다. 처음에는 ‘내 가게’를 지키자는 소박한 생각에서 시작했다. 대형마트 횡포를 직접 겪으면서 관련 뉴스를 읽다보니, ‘동네 상권’ ‘지역 경제’, 나아가 ‘재벌의 횡포’까지 보였다. 임씨는 “망원시장 상인들만의 승리가 아니라, 대형마트에 이긴 선례를 만들고 싶다”라고 말했다. 전역 후 복학하는 큰아들(23)과 대학 새내기가 되는 작은아들(20)에게 “데모하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잔소리를 쏟아내던 가장은 어느새 ‘당랑거철’ 투사가 되어 있었다.





퇴근길 총장에게 “내 강의 돌려주오”
해고 강사 류승완

얼핏 보면 등산객 같다. 성균관대 해고 강사 류승완 박사(45)는 두꺼운 패딩에 털모자와 목도리로 중무장한 채, 총장실이 있는 ‘600주년기념관’ 건물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그가 농성 중이란 걸 알았다. 농성을 시작할 때부터 길렀다는 수염이 덥수룩했다. 그가 입고 있는 조끼에는 ‘삼성 회장 이건희씨는 빼앗아간 강의를 돌려다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시사IN 이명익
그는 2011년 2학기 성균관대 학부 강의를 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가 곧바로 취소 통보를 받았다. 강사들의 강의 배정은 학과 교수들이 정하는데, 류씨의 경우 대학 본부로부터 거부당했다. 이유도 분명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2000년 학내 분규 당시 학생들을 배후 조종한 게 의심된다고 했다. 사실이 아니라고 류씨가 소명하자, 그 뒤에는 노조 활동이 우려된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 회복을 요구하며 여의도에서 장기 농성을 벌이는 김동애·김영곤 강사 부부를 도운 건 맞지만 강의를 배제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보다 류씨는 불경죄를 의심한다. 외부 학술지에 성균관대 총장이 주도한 국제학술대회의 발표 내용 가운데 일부 논리가 황도유학(일본의 식민 지배에 논리적 정당성을 준 친일 유학)과 비슷하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게다가 강의 시간에 성대 재단을 장악한 삼성그룹의 대학 운영에 대해서도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류씨는 대학 교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면서도 신분은 불안정한 ‘보따리 장사(시간강사)’ 처지를 대변한다. 그는 2011년 8월부터 삼성과 학교 총장, 상임이사, 이사장을 상대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가 유일하게 이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은 퇴근시간대인 저녁 6시에서 8시 사이다. 류씨는 이들이 퇴근할 때 옆으로 다가가 “내 강의를 돌려달라”고 말한다. 이것이 시위의 전부이다. 대부분은 묵묵부답, 가끔 ‘힘내시라’는 가벼운 말을 건넨다고 한다. 그는 칼럼을 기고하거나 시민단체에서 주관하는 강의로 생활을 버틴다.





정비사의 손 스피커를 만지다
쌍용차 해고자 윤충렬









   

ⓒ시사IN 이명익
매일 저녁 8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는 ‘문화제’ 성격의 행사가 열린다. 매주 월요일에는 천주교 미사가, 수요일에는 노조탄압 공동투쟁단의 문화제가, 금요일에는 함께 살자 희망행진 문화제가 이어진다. ‘대한문 지킴이’를 자처하는 윤충렬씨(44)가 분주해지는 시간이다. 음향기기, 자리 배치 같은 일거리가 늘어나서다.

그가 집을 비운 사이, 윤씨의 아들은 아버지를 대신해 세면대와 수도를 뚝딱 고쳤다. 올해 중학생이 되는 아들은 장래희망을 ‘정비사’라고 할 만큼 손재주가 좋다. 윤씨는 절로 미소가 나면서도 머리를 내저었다. 자신의 처지를 닮을까봐서다.

그는 쌍용차 부산지역 정비팀에서 일했다. 손재주가 타고났다는 말을 들을 만큼 정비 기술이 빼어났다. 그러나 2009년 77일간 옥쇄 파업에 참여하면서 그해 12월 해고당했다.

직장을 잃은 그는 거짓말쟁이 아빠가 됐다. 곧 복직될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올해 1월 달력을 넘기면서도 “조금만 더 참아. 곧 (복직이) 될 거야”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했던 약속이었다.

약속을 지켜내기 위해, 윤씨는 오늘도 시청 앞을 오가는 시민들에게 쌍용자동차 사태를 설명하느라 분주하다.





기계 소리만 나면 산으로 올라갔지
강원도 골프장 반대하는 이순남

2013년 평창 동계스페셜올림픽 개막식이 있던 1월29일 밤 10시.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구정리에 사는 이순남씨(55)는 남편 이인식씨(60)와 이날 처음으로 얼굴을 맞댔다. 이씨네는 새벽별 보고 나갔다가, 저녁별 보고 들어오는 ‘농성 부부’다. 이씨는 강릉시청 앞 농성장에, 남편은 강원도청 농성장에 머물렀다. 그나마 남편은 지난해 12월 강원도가 골프장 관련 인·허가 등 전반적인 과정과 절차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도청 농성을 그만두었다.









   

ⓒ시사IN 백승기
5년 전, 이씨네가 사는 구정리 일대에 골프장 건설 허가가 났다. 골프장은 구정리 마을을 포위하듯 에워싸는 형태로 건설될 예정이었다. 이씨네는 강제이주 대상은 아니었지만, 골프장 인근 20㎞ 이내 마을에 살았다. “골프장이 들어서면 농사는 베러부러.” 이씨네는 그동안 친환경 농사를 지었다. 제초제 등 농약을 남용하는 골프장 허가는 그들에게 농사를 짓지 말라는 소리와 같았다. 

그때부터 470일 동안 골프장 반대 농성을 하다 보니, 농사일은 뒷전으로 밀렸다. 지난해 봄에는 밭일을 하다가도 기계 소리만 나면 산으로 달려갔다. 호미를 든 장화 신은 노인들이 소나무를 베려는 건설사 직원들과 맞섰다. 인간 띠를 만들어 굴착기를 둘러쌌다. 85세가 넘은 노인들도 소나무를 안고 굴착기를 막았다. ‘어르신 투사’ 덕에 공사는 잠정 중단 상태다.

1월28일 점심께 기자가 농성장에 도착하자 이씨가 대접에 밥을 펐다. 동해안 지방에서만 맛볼 수 있는 밥 식해와 무채, 물김치, 배추김치가 반찬통째 신문지 위에 깔렸다. 그가 손수 수확한 친환경 쌀과 무·배추·고추로 만들었다. 

최근 주민들은 최명희 강릉시장과 면담을 하고 주민·강릉시·골프장 추진업체 3자가 참여하는 상시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씨는 “저놈의 골프장 땜시, 그동안 설에도 친정과 시댁에 못 갔더랬어. 올해는 갈 수 있겄구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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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기여성과급이(2011.12.26 지급분) 왜 이렇게 줄었나요?? 작년보다 늘어야 정상 아닌가요? 조합원 2011.12.26 1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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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기사 스크랩)호랑이 피했더니 여우가‥" KAIST 학생들 불만 정보 2011.10.19 19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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