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시신 수습 후 발견된 유서 - 동지들에게 보내는 글 >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적들이 투쟁의 제단에 재물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동지들을 희생시킬 수 없었습니다.
동지들을 잃을 수 없었습니다. 저의 육신이 비록 여러분과 함께 있진 않지만, 저의 죽음이 얼마만큼의 영향을 줄 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악착같이 싸워서 사람 대접 받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큰 나라를 반토막내서 배부르고 등 따신 놈들 미국과 극우보수 꼴통들이 이번 참에
아예 지네들 세상으로 바꿔 버릴려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는 실종된 지 오래됐고, 반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죽음을 강요하거나 고분고분 노예로 살라고 합니다.
그 속에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안락만을 위해서 투쟁할 것이
아니라 통큰 목적을 가지고 한발 한발 전진하기 위해 손을 잡고 힘을 모으는 적극적이고 꾸준한 노력과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노동자의
생존권, 민중의 피폐한 삶은 사상과 정견을 떠나서 무조건 지켜져야 하고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기득권을 버리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합니다.
우리 민중은 이론가가 아니지 않습니까? 저의 죽음이 세상을 바꿀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최소한
화물연대 조직이 깨져서는 안 된다는 것, 힘 없는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린 지 43일이 되도록 아무 힘도 써보지 못해서는 안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호소하기 위해 선택한 것입니다.
눈을 감으면 깜깜할 겁니다. 어떻게 승리하는지 저는 보지 못할겁니다. 그것이 아쉽고
억울합니다. 꼭 이렇게 해야, 이런 식의 선택을 해야 되는지, 그래야 한 발짝이라도 전진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속상하고
분합니다. 이름을 거론하자니 너무나 많은 동지들이 떠오릅니다. 저를 이만큼 건강한 간부로 활동가로 있게 해 준 소중한 분들. 저를
믿고 따라 준 형님, 동생, 친구들. 이 의미있는 투쟁, 힘겨운 투쟁에 끝까지 남아 준 동지들 모두가 저에겐
희망이었습니다.
광주라는 곳도 사랑합니다. 날고 싶어도 날 수 없고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가 행복하고
서로 기대며 부대끼며 살아가길 빕니다. 복잡합니다. 동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면서 그 속에 저도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 올림.
(투쟁경과) - 3월 16일 대한통운 광주지사 택배 노동자 78명 일방적 계약해지
당함. - 3월 16일부터 현재까지 파업투쟁 전개 - 박종태 1지회장은 3월 16일 집단해고 사태 후부터 해고조합원들을 책임지고
투쟁을 이끌어왔음. - 과정에서 연일 수십여명에 이르는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연행되고, 1인 시위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어
왔음. - 대한통운자본은 대화를 일체 회피함으로 인해 파업이 장기화됨. - 4월 23일경 박종태 지회장을 비롯한 조합원 2명 체포영장
발부 - 4월 29일 아침 “끝까지 싸워서 반드시 이기자”는 글을 남기고 사라짐. - 5월 2일 12시 30분경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
숲 속 나무에 목매단채 자결한 시신 발견 - 검안 결과 4월 30일 오후 3시~4시경 사망 추정 - 화물연대본부 5월 2일
중앙집행위원회를 긴급 소집하여 18시경 대전중앙병원 영안실에서 향후 대책 논의 - 화물연대본부 투쟁위원회로 전환하기로 결의 -
열사의 죽음은 운송료인하, 대량해고, 노동탄압을 자행한 대한통운 자본과 경찰의 상상을 초월하는 탄압에 의한 타살로 규정함. - 이후
운수노조, 공공운수연맹, 민주노총, 진보정당 등 제 시민사회단체와 논의하여 빠르게 열사투쟁대책위로 전환 계획
(열사 약력
및 유족) - 1972. 11. 16일생 - 2003. 화물연대 가입 - 2005. ~ 2007. 2. 광주지부 사무부장 -
2006. 3. 대 삼성투쟁 고공농성 진행. 구속 - 2007. 화물연대 중앙위원 - 2008. 5. ~ 2009. 화물연대 광주지부
1지회장 - 2009. 화물연대 대의원, 공공운수연맹 대의원
<78명 집단해고 사태까지의
진행 경과 및 투쟁 상황>
■ 진행 경과
○ 2009년 1월 - 수수료 인상 합의 - 현행 택배
1건당
920원에서 30원 인상에 대하여 2월부터 시행하기로 구두 합의 함.
○ 2009년 3월 15일 - 회사측은 대한통운
본사에서 수수료 40원이 인하되어 물건이 배달되고 있어 30원 인상합의는 없던 것으로 하겠다는 일방통보 함.
○ 2009년 3월
16일 - 노조측은 합의서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회사측에 항의하며 계약서상에 있지 않은 분류작업을 거부 함. - 택배물 분류작업은
계약서상에 회사측에서 하기로 되어 있던 것임. 하지만 그동안 노조측에서 분류작업을 단 한푼의 수수료 없이 진행 하였음. - 오전 11시
회사측은 일방적으로 12시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전원해고할 것을 문자로 전송함. - 오후 15시 회사측에서 택배노동자 전원에게 18시까지
복귀할 것을 명하고, 위반시 해고할 것을 문자로 재전송함. 하지만 회사측은 18시 이전에 이미 출입문을 봉쇄하고 택배노동자의 출입을
막았음
○ 2009년 3월 17일 - 내용증명우편을 통한 해고통지
○ 회사측의 치밀한 사전 준비 -
회사정문 앞 및 건너편에 4월 3일까지 집회신고 냄 - 사전에 대체차량 200여대 준비. 타지역에서 온 차량에 대해 사전에 네비게이션까지
구입,지급함 - 지역 광고신문인 광주사랑방 신문에 3월 18일부터 영업소 모집 광고 시작 (현재 위수탁계약을 통한 방식을
영업소방식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여짐.)
■ 투쟁 상황
○ 2009년 3월 17일 - 오전 7시
출근투쟁 전개 - 오후 2시 기자회견 진행 - 오후 6시 집하물건 전달투쟁 진행
○ 2009년 3월 18일, 19일,
20일 - 오전7시 출근 투쟁 진행. - 오후6시 집하물건 전달투쟁 진행
○ 2009년 3월 21일 14시 -
대한통운자본 규탄 화물노동 총력 결의대회
○ 2009년 3월 23일 - 사측에서 1월 임금 지급 중지 내용증명
발송
○ 2009년 3월 26일 - 집단해고 철회, 임금 지급 중지 철회 촉구 기자회견
○ 2009년 3월
24일,25일 - 투쟁승리를 위한 대한통운분회 수련회
○ 2009년 3월 28일 - 대한통운자본 규탄 2차 화물노동자
총력투쟁결의대회
○ 4월 4일 - 대한통운자본 규탄 3차 화물노동자 총력투쟁결의대회
○ 4월 13일 ~ 4월
17일 - 40여명의 대한통운택배분회 조합원 전국순회선전 진행 - 대한통운 자본의 폭력성과 악랄함을 알려내고 4월 18일
총력투쟁결의대회 선전
○ 4월 18일 - 대한통운자본 규탄 4차 화물노동자 총력투쟁결의대회 - 박종태 1지회장, 김성룡
대한통운택배분회장 체포영장 발부
○ 4월 23일 ~ 5월 1일 - 박종태 1지회장과 36명 택배조합원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에서
투쟁 전개 - 공권력의 살벌한 탄압으로 인해 투쟁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음. - 4명의 조합원 폭력 연행
○ 5월 3일
- 박종태 1지회장 대한통운자본에 항거 자결한 채로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에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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