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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조직개편안, 철학은 없고


천민자본주의만 있다!


- 부처 통폐합이 문제가 아니라 국가미래가 걱정돼 -


대통령직인수위가 정부조직개편안을 마련하여 이명박 당선인에게 보고했다. 이 안을 근간으로 하여 한나라당은 「정부조직법 전부개정법률안」을 지난 1월 21일 발의하였다. 한나라당은 정부조직개편안의 개정 이유를 “국경 없는 무한경쟁 시대에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일류 정부를 건설하기 위하여, 우리의 미래에 관한 전략기획능력을 강화하고, 정부의 간섭과 개입을 최소화하는 작은 정부 구축을 통해 민간과 지방의 창의와 활력을 북돋우는 한편, 꼭 해야 할 일은 확실히 하되 나라살림을 알뜰하게 운영하여 국민부담을 줄이고 칸막이 없이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일하는 정부를 구축할 수 있도록 정부기능을 효율적으로 재배치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많은 학계전문가들이나 정․관계의 핵심인사들은 이번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하여 쉽게 수긍하는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인수위의 정부조직개편에 대한 방안이 대다수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전문적인 조직진단에 따라 수립된 것이 아니라, 이명박 당선인이 그 동안 줄기차게 주장했던 시장경제주의에 의한 자본의 논리에 따라 ‘시장의 원리’, ‘힘의 논리’가 작용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의 폐지는 차기 정권의 국가과학기술에 대한 국책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바로미터라고 볼 수 있으며, 그만큼 과학기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충격으로 와 닿고 있다.






선거에서 승리한 측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부를 만들기 위해서, 전리품으로 챙기는 것이 정부조직개편이다. 이른바 엽관주의다. 엽관주의는 민주정치의 발달에 따라 선거를 통하여 집권한 정당과 정당지도자에게 관료의 임면에 대한 재량권을 부여함으로써, 정치지도자의 국정지도력(executive leadership)을 강화하고 관료기구와 국민과의 동질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영국과 미국에서 발전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정책의 영속성을 저해하고, 국민의 공복(公僕)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할 위험성이 있다.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하여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해당 부처의 공무원이나 관련 종사자들이 하나같이 우려하는 측면이기도 하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속칭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정부조직개편이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관련기관의 기능 통․폐합, 인력감축이 거론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대표적인 시범케이스로 공무원과 공공기관, 정부출연(연)이 항상 희생양으로 자리매김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이번과 같이 해당 전문가들과 관련종사자들이 철저하게 배제된 채, 천민자본주의 원리에 기초하여 상명하달식의 일방적인 밀어불어치기식의 정






부조직개편이 이루어진 경우는 없다. 그 흔한 공청회도 없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이 아닌가 싶다.






각설하고, 우리의 최대관심사인 과학기술부의 폐지를 보자. OECD선진국의 과학기술행정체계를 살펴보면, 미국은 NSTC(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과학기술정책조정기능을 수행하고, 예하 사무국인 OSTP(Office of Science & Technology Policy)가 있으며, 영국의 경우에도 OST라는 과학기술행정처리 부처가 있으며, 일본의 경우 국가연구개발사업을 주도했던 과학기술청을 문부성으로 흡수하여 문부과학성으로 확대 개편하고 종합과학기술회의를 총리가 직접 주관하고 있다. 얼핏 보면 우리의 교육과학부가 일본의 문부과학성과 유사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일본은 오랜 기간 동안 새로운 혁신과 국가발전의 중심축으로 과학기술창조입국을 주창해 왔지만, 인수위의 과학기술정책은 인재과학부에서 교육과학부로의 부처명칭변경 해프닝에서 볼 수 있듯이, 뚜렷한 철학도 없이 시류에 따라 오락가락했다.






과학기술계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과학기술부의 폐지에 대해 하나같이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작 왜 과학기술부가 존치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리적이고 실증적인 대안은 제시하지 못했다.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흔히 과학기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모래알이라고 한다. 결정적일 때, 뭉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아마도 각자 연구실에서 열심히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일만 할 줄 알았지, 정치에는 문외한이었던 순진함의 결과라고 본다. 그러다보니 이럴 때는 항상 찬밥신세다. 국가의 미래를 담보하는 국가과학기술정책과 관련한 사안이 정치노름에 좌지우지되어서는 안 된다. 개발도상국에서 국가경쟁력 세계 10위권으로의 도약은 첨단국가과학기술의 역할이 지대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과학기술계는 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경쟁이라는 미명하에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공성마저 심각하게 훼손된 채, 공공의 적으로 간주되어 개혁의 희생양으로 내몰리곤 했다. 자본은 이익이 되지 않는 곳에 투자하지 않는다. 이것이 냉혹한 자본주의의 경제 원리다. 기초과학기술의 육성과 고급과학기술인력의 양성이 자본경제주의에 내몰리는 순간, 국가과학기술의 인프라는 일순간에 무너져 버리고 만다. 주춧돌이 빠진 과학기술의 미래는 결코 없다. 과학기술정책의 강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OECD조차 인수위의 과학기술부 해체에 대해 신중하게 고려할 것을 주문했다. 부처이기주의 혹은 집단이기주의에 편승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무엇이 핵심이고, 무엇이 주변인지에 대한 명확한 자기중심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잣대에 따라 재단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차대한 사안에 대해, 칼자루를 쥐었다고 함부로 칼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다. 과학기술정책이 국가와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국책공공성을 천박한 자본의 시장주의에 내맡겨서는 안 된다. 국가가 자신의 책무를 제대로 분별하기를 기대한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따르면, 우리 학교는 교육과학부 소관으로 편제되도록 과학기술원법을 개정토록 하고 있다. 기관의 자율성이 과학기술부 산하에 있을 때보다 위축될 수 있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이번 기회에 지식경제부로 가고자 하는 시도도 있다. 하지만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도 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지간에 자신의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본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흔들림 없이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까지 덩달아서 부화뇌동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갈 길을 정확하게, 그리고 올곧게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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