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마당
  • 조합원마당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2007.12.13 00:00

사상의 거처

조회 수 10498 댓글 0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입만 살아서 중구난방인 참새떼에게 물어본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다리만 살아서 갈팡질팡인 책상다리에게 물어본다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
난마처럼 어지러운 이 거리에서
나는 무엇이고
마침내 이르러야 할 길은 어디인가

갈 길 몰라 네거리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웬 사내가 인사를 한다
그의 옷차림과 말투와 손등에는 계급의 낙인이 찍혀 있었다
틀림없이 그는 노동자일 터이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어요 선생님은
그의 물음에 나는 건성으로 대답한다 마땅히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자 그는 집회에 가는 길이라며 함께 가자 한다
나는 그 집회가 어떤 집회냐고 묻지 않았다 그냥 따라갔다

집회장은 밤의 노천극장이었다
삼월의 끝인데도 눈보라가 쳤고
하얗게 야산을 뒤덮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추위를 이기는 뜨거운 가슴과 입김이 있었고
어둠을 밝히는 수만 개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고
한입으로 터지는 아우성과 함께
일제히 치켜든 수천 수만 개의 주먹이 있었다

나는 알았다 그날 밤 눈보라 속에서
수천 수만의 팔과 다리 입술과 눈동자가
살아 숨쉬고 살아 꿈틀거리며 빛나는
존재의 거대한 율동 속에서 나는 알았다
사상의 거처는
한두 놈이 얼굴 빛내며 밝히는 상아탑의 서재가 아니라는 것을
한두 놈이 머리 자랑하며 먹물로 그리는 현학의 미로가 아니라는 것을
그곳은 노동의 대지이고 거리와 광장의 인파 속이고
지상의 별처럼 빛나는 반딧불의 풀밭이라는 것을
사상의 닻은 그 뿌리를 인민의 바다에 내려야
파도에 아니 흔들리고 사상의 나무는 그 가지를
노동의 팔에 감아야 힘차게 뻗어나간다는 것을
그리고 잡화상들이 판을 치는 자본의 시장에서
사상은 그 저울이 계급의 눈금을 가져야 적과
동지를 바르게 식별한다는 것을

(김남주의 詩 '사상의 거처' 全文)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17 하늘 아래.......................... file 노동자 2011.01.19 2970
616 피로한 심신 날려 보아요 조합원 2008.09.04 4106
615 폭행 교수 불구속 기소 검찰 송치 노동자 2014.08.22 2354
614 포스텍이 카이스트보다 나은 점 하나 노동자 2014.10.22 2210
613 포스코에너지 임원, 항공노동자 폭행 물의 노동자 2013.04.22 5695
612 퍼옴, [논평] 새누리당은 꼼수 그만 부리고 투표권 보장 입법에 적극 나서라 노동자 2012.11.01 2564
611 팥빙수 방멩이 2008.07.08 4657
610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맑시즘2014>에서 함께 토론해요! 맑시즘 2014.08.03 4707
609 통합진보당 당권파 하는 꼴 노동자 2012.05.14 2702
608 코뮤니스트 4호, 붉은글씨 2호가 나왔습니다. file wjsakd 2014.05.03 2120
607 커튼뒤의사람들(동영상, 꼭보셔야 합니다! 47분!) 조합원 2008.11.12 3666
606 카이스트 직원이 억대 연구비 횡령 노동자 2014.10.26 2259
605 카이스트 직원, "자살한 카이스트 학생들 우둔하다" 노동자 2011.08.10 5568
604 친일파 김활란 노동자 2013.05.31 2529
603 충남지노위, 한국과학기술원 비정규직 부당해고 판정(펌) 하얀섬 2011.02.17 3846
602 축~욱 늘어지는 몸, 정신 버쩍들게 만드는 MB 박봉섭 2008.05.27 5062
601 청년일자리 뺏는 귀족노조의 고용세습. 노동자 2015.02.12 4148
600 청국장 제대로 알고 먹읍시다 좋은정 2008.10.10 7853
599 철도노조 23일간의 투쟁 노동자 2014.01.21 6307
598 철도공사가 조합원 2009.12.17 3201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2 Next
/ 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