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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식 개편' 추진 논란…"상처만 남을까 걱정"
연구현장 "개혁 목표·방향 전혀 몰라"
 
 
과학기술계가 절체 절명의 기로에 서있다. 청와대와 정부는 연구현장의 효율성과 잠재능력 저하 문제가 지속돼 과학계의 구조조정을 은밀히 추진하고 있다. 과학계에 비교적 온정한 태도를 유지하던 노무현 정권의 노선에서 탈피해 MB정부는 개혁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정부출연연구소(이하 출연연)-대학간 통폐합, 기관장 사표수리 등 강도 높은 개혁안이 흘러나오자 연구현장에서도 '정권교체의 매서움'이 현실감을 띠고 있다. 연구현장 분위기가 사뭇 험악해졌다. 정부의 구조조정에 대부분 연구기관들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연구소들은 지금 개점휴업 상태다. 자칫 이대로 몰락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마저 엄습하고 있다. 과연 MB정부는 과학계에 긍정적 변화를 추진할 수 있을까? 개혁 논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그 과정의 연구현장 실상과 과학계 개편 대안을 3편에 거쳐 짚어본다. 보도순서는 ①일방적 개편 추진 '혼돈의 현장' ②과학계 리더십 붕괴 ③MB가 해야 할 일[편집자주]


30년 역사 이래 최악의 위기 상황에 몰린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이 구조조정의 타깃이 되어 칼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연내 26개 출연연 중 1~2개는 통폐합되고 2~3개는 민영화될 수도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국가 R&D의 최전선에 비유되던 출연연들이 정권이 바뀔 대마다 벼랑 끝에 서고 있다. 특히 MB정부 출범이후 안이한 개편 추진 방법으로 과학자들의 연구환경과 연구경쟁력이 위협받고 있다. 연구자들은 MB정부가 다양한 방법으로 과학자들의 사기를 짓밟고 있다고 한탄하고 있다.


# 상황 1 - 유례없던 출연연 기관장 '줄사표 수리'
최근 정부로부터 중도하차 통보를 받은 K 원장. 그는 재임기간 기관평가를 미흡에서 우수로 바꿔놨을 뿐만 아니라 기관 예산도 2~3배 이상 키웠다. 기관장 재신임 과정에서 '설마 내가~'했다. 사표수리 통보를 받았지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상부에 물어봐도 무조건 모른단다. 연구회도 모르고, 정부도 모른다. 청와대 인사권을 가진 인사가 특별한 기준없이 지시하고 있다는 설만 나온다. K 원장 뿐만 아니라 10일 현재까지 26개 출연연 기관장 중 절반 가량 중도하차하게 됐다. 지난 주에는 STEPI(과학기술정책연구원)와 KISTEP(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기관장들도 사표수리됐다.


역대 정권에서 과학계 기관장들을 임기 만료 전 이처럼 사표를 대거 수리한 적은 없었다. 향후 적어도 2~3개월은 기관의 책임자 없이 조직이 운영되어야 할 판이다. 통폐합 또는 민영화를 위한 사전 수순이라는 소문으로 1만여명의 연구자들이 불안해 하고 있다.


 
# 상황 2 - 연구기관 흔들기로 과학자들 '사기 바닥'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근무하고 있는 P 박사. 그는 지난 4월 중순의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단다. 수년간 땀흘려 자리잡은 자신의 직장이 다른 기관과 통합한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직장이 없어질 수 있어서 요즘에는 가족들 볼 낯이 없다. 깊은 자괴감에 빠져 연구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통폐합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출연연들의 대부분 연구원들도 P 박사의 심정과 다를바 없다.


한국화학연구원 부설 안전성평가연구소 K 연구원 역시 깊은 자괴감에 빠져 있다. 수년동안 한상섭 소장을 중심으로 출연연 중 예산·재정자립도 1위에 등극하는 성과를 거두는 등 연구소의 본격적인 성장기를 맞게된 상황에서 최근 기관장 사표수리와 통폐합·민영화 등 각종 추측성 소문들이 나돌고 있어 마음의 갈피를 잡기 힘들다. 정부의 출연연 개편 의도가 무엇인지 연구원들은 아는게 없다.


# 상황 3 - 목표·방향성 부재 '출연연 통폐합'
'우리 연구소가 통합 당하는가 보다.'
현장에서는 이것밖에 모른다. MB정부의 철학과 목표가 없고 방향성 조차 가늠하기 힘든 과학계 개편 움직임이 연구현장 과학자들의 가슴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있다. 출연연 연구원들도 10명중 9명은 스스로 출연연에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지만, 작금의 일방적·묻지마식 방법으로 추진되는 개편 움직임은 있어서는 안될일이라며 개탄하고 있다.


연구현장에서는 연구기관 흔들기 → 연구경쟁력 저하 → 우수인재 유입 실패 → 국가 경쟁력 위기 등의 악순환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정확한 목표나 기대효과, 방향성 등 과학계 개편에 대한 밑그림을 정부나 청와대는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과학계 정책전문가는 "과학계 변화는 필요하지만, 반드시 동의를 얻어가며 해야하는 집단"이라며 "변화를 꾀하되 과학계를 아무런 목표와 방향없이 흔드는 움직임은 정말 안된다"고 안타까워했다.


# 상황 4 - '출연연 육성법'도 손질될듯
정부가 출연연 개편을 추진하기 위해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을 일부 손질할 태세다. 법안 개정이 수면 위로 올라올 경우 연구현장은 이를 저지하기 위한 움직임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출연연 육성 법률은 연구기관의 재산권과 기관장 선출 등 기관 경영과 관련된 핵심 사항들이 대거 포함돼 있어 정권 성향에 관계없이 일관되게 일할 수 있는 제도적인 완충장치와 맥락을 같이 한다.


법률이 폐지될 경우 연구원들의 신분과 연구기관의 재산권이 법률로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과학계 한 고위 인사는 "국가 전체의 과학기술 개편 목적과 방향이 연구현장과 공감대를 이뤄나가야 개혁이 성공할 수 있다"며 "변화의 시도가 일방적인 개혁이 아닌 공동체적 개혁운동으로 번지길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말했다. 
 
 
<대덕넷 김요셉 기자> joesmy@hellodd.com 
2008년 0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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