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마당
  • 조합원마당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2007.12.13 00:00

사상의 거처

조회 수 14646 댓글 0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입만 살아서 중구난방인 참새떼에게 물어본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다리만 살아서 갈팡질팡인 책상다리에게 물어본다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
난마처럼 어지러운 이 거리에서
나는 무엇이고
마침내 이르러야 할 길은 어디인가

갈 길 몰라 네거리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웬 사내가 인사를 한다
그의 옷차림과 말투와 손등에는 계급의 낙인이 찍혀 있었다
틀림없이 그는 노동자일 터이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어요 선생님은
그의 물음에 나는 건성으로 대답한다 마땅히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자 그는 집회에 가는 길이라며 함께 가자 한다
나는 그 집회가 어떤 집회냐고 묻지 않았다 그냥 따라갔다

집회장은 밤의 노천극장이었다
삼월의 끝인데도 눈보라가 쳤고
하얗게 야산을 뒤덮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추위를 이기는 뜨거운 가슴과 입김이 있었고
어둠을 밝히는 수만 개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고
한입으로 터지는 아우성과 함께
일제히 치켜든 수천 수만 개의 주먹이 있었다

나는 알았다 그날 밤 눈보라 속에서
수천 수만의 팔과 다리 입술과 눈동자가
살아 숨쉬고 살아 꿈틀거리며 빛나는
존재의 거대한 율동 속에서 나는 알았다
사상의 거처는
한두 놈이 얼굴 빛내며 밝히는 상아탑의 서재가 아니라는 것을
한두 놈이 머리 자랑하며 먹물로 그리는 현학의 미로가 아니라는 것을
그곳은 노동의 대지이고 거리와 광장의 인파 속이고
지상의 별처럼 빛나는 반딧불의 풀밭이라는 것을
사상의 닻은 그 뿌리를 인민의 바다에 내려야
파도에 아니 흔들리고 사상의 나무는 그 가지를
노동의 팔에 감아야 힘차게 뻗어나간다는 것을
그리고 잡화상들이 판을 치는 자본의 시장에서
사상은 그 저울이 계급의 눈금을 가져야 적과
동지를 바르게 식별한다는 것을

(김남주의 詩 '사상의 거처' 全文)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31 [칼럼] KAIST의 미래는 관리자 2007.11.26 16284
630 망향휴게소 노조 투쟁의 진실...(끝까지 읽어주시길) 조합원 2007.11.27 17479
629 조합원 여러분의 의견이 많이 개진되길 바랍니다. 주인장 2007.11.29 18134
628 노조 홈페이지 오픈을 축하합니다. 손형탁 2007.11.30 16986
627 가을에 비가 오는 까닭은.... 날세동 2007.12.06 16958
626 연습--로고자동차... 정상철 2007.12.06 17468
625 노동가요(불나비) 황규섭 2007.12.06 17301
624 노사화합을 위하여... 함용덕 2007.12.06 18118
623 행복을 주는사람 함용덕 2007.12.06 13533
622 조합원들의 자유로운 언로가 되길 박봉섭 2007.12.06 18165
621 노동조합 홈페이지 개통을 축하드립니다. 기온토지 2007.12.11 18068
620 지하철노동자 용변보다 참사... 조합원 2007.12.12 18842
» 사상의 거처 날세동 2007.12.13 14646
618 창립20주년 기념식행사 (동영상) 관리자 2007.12.13 19233
617 정부-공무원노조 `정년연장' 의견접근 익명 2007.12.14 23511
616 조합원게시판 수정요구 익명 2007.12.14 22112
615 재미있는 한자성어(2탄) 야화 2007.12.18 23093
614 재미있는 한자성어(3탄) 야화 2007.12.20 23981
613 재미 있는 한자성어(4탄) 야화 2007.12.21 25899
612 연말 연시를 따뜻하게 나그네 2007.12.24 29529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2 Next
/ 32